* 2024년 1월 10일부터 미디액트영상미디어센터에서 시작된 김해솔의 시창작 수업​(인 척하는 친구 찾기 프로젝트) <영상과 대담의 형식으로 시쓰기>에서 상영한 영상, ​비평, 산문 등을 기록한 아카이빙 공간이다.


** 한 시즌(프로젝트)이 끝날 때마다 공간의 구조나 내용이 변한다.


*** 초월월드 click!



About

2기 작품 상영회

리퀘스트 시네마

2기 작품 상영회 비평

상영회를 위한

지침서

1기 (2024.1.10-2.7)

기획/참여작가/강사 : 김해솔

참여작가 : 강민종 고우석 강예솔 권종구 김다솔 김시안 김홍요 김혜령 남선미 박성원 박주영 조서영 정준모 ​이수련 신소요

포스터 : 남선미





2기 (2024. 3.28-4.25)

기획/강사/포스터 : 김해솔

참여작가 : 고우석 김다솔 김려린 김민선 김민지 김한나 남영신 이수련 이수연

비평 : 김유수 이여로

상영회를 위한 지침서



김해솔 (시인)



상영회를 준비하는 동안 고려할 사항이 많았다. 우선 상영회의 특성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​을 수 없었는데 어쨌든 상영회를 한다는 것은 관객이 한 사람이라도 필요한 일이고 한 사람​이라도 상영회를 보러 오기 위해 자신의 시간이라는 것을 투자한다면 그 사람을 (어느 정도​까지는) 만족시켜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. 이렇게 될 시 기획하는 입장에서 고려하​지 않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각각의 작품 퀄리티다. 하지만 이 수업은 6주차 수업이고 상영​회는 5주차에 이루어지며 상영회를 준비할 수 있었던 기간은 고작 4주, 한 달이었을 뿐이다. ​(이마저도 첫 주 수업이 오티에 가깝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3주로 봐야 함) 이런 상황에서 작​품 퀄리티를 운운하는 것은... 사실상 무리다. 기획자도 작가도 전부 뼈를 갈아 넣지 않는 이​상 말이다,라는 것이 내가 4주 차에 내린 결론이었다.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가? 뼈를 갈아 ​넣어야 하는가?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아니, 이런 방식은 애초에 내 수업의 취지와 전​혀 맞지 않는 방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. 이 수업은 애초에 "잘" 하는 것보다는 지금 나​의 "최선'을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이 수업의 주인공은 당연하게도 관객이 아니라 수​업을 듣는 분들이었기 때문이다.


​작품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


우선 내용과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것이 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​형식을 다르게 할 수 있다

형식은 내용이나 기술 보다 완성도,라는 평가 기준에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

형식이 과하면 본질을 훼손하지만

본질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본질에 대한 정의로부터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다

물론 형식이란 결코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


상영회에 입장한 당신은 지금 내가 작성하고 있는 지침서를 내 목소리로 듣게 될 것이다. 그​때 당신이 듣게 되는 지침서는 이 글과 같을 수도, 다를 수도 있다. 당신은 보고 듣게 될 것이​다. 어떤 영상들과 어떤 시들을. 그리고 당신은 어쩌면 보게 될 것이다. 대체 이게 뭐지 싶은 ​GV를. 상영회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수업을 듣는 분들께 물었다. 이것을 통해 무엇을 얻고 ​싶죠. 무엇을 얻기를 바라죠. 이제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. 당신은 이것을 통해 무엇을 얻고 ​싶은가. 무엇을 얻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는가. 당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라. 당신이 원하는 것​을 말할 수 있다면. 그리고 그걸 당신 말고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. 어쩌면 미신 아​닌 것이 없기 때문에 미신까지도 믿는 나를 지켜주고 있는 것만 같은 그 신이, 당신이 원하는 ​것까지도 지켜줄지도 모를 일.


​즐거운 관람 되시기를 바라며. 김해솔 드림.







중첩된 여름과 7년의 시간


고우석(https://www.instagram.com/wooseoksee)


여름이라는 이미지와 그것의 중첩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. 그렇게 7년 전이 떠올랐다. 한​해를 넘게 여행하면서, 무더운 나라만을 골라 다녔다. 의도 했는지 의도하지 않았는지 기억나지 ​않는다. 7년이 흐른 ‘오늘’을 돌아보니, 그때의 무더위는 계속해서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며 내 주​위를 맴도는 듯 했다. 7년동안 나에게는 계절이 없었고, 여름만이 나의 ‘오늘’ 위에 덧 씌워진 것 ​같았다. 이러한 ‘오늘’은 계속해서 나의 삶에서 반복될 것이고, 이것이 30년 후도 똑같을 거라는 ​생각이 나를 잠식했다. 그렇게 영상을 만들게 됐다. 영상은 7년전 만달레이의 기록에서 시작된​다. 이윽고 오늘의 ‘지하철’로, 그리고 30년 후의 ‘메마름’으로 나아갔다가, 다시 오늘의 ‘몸부​림’과 ‘발악’으로 끝이 난다.


목격자


김다솔(https://www.instagram.com/adlosmik/)


내가 채집하고자 했던 것은 언젠가 내가 목격한 파편의 이미지다. 그 이미지는 방심하고 있던 ​나에게 난데없이 날아들어 일순간 얼굴을 일그러지게 했다.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그 순​간을 봉인해 이곳에 묻는다.

열여덟에 엄마 손 잡고 갔던 철학관의 터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


김려린


아 이 세상 제일가는 가치는 순수 순수만큼 매력적인 것은 없다 순수만큼 재미를 주는 것은 없다 ​왜냐하면 순수는 절대 정돈되지 않거든 아는 게 늘어날수록 깨끗해지는 기분이다 지적 허영을 쫓​아가다 가랑이가 찢어진다 마구 더럽히고 토라지고 꺄르르 웃어젖히고 싶다 아이처럼 혹은 갓 태​어난 아기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채 속으면서 살고 싶다 그것들이 나를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지라​도 지독하게 냄새를 맡고 싶다 똥통에 아주 코를 박고 킁킁대고 싶다


마리아나 해구의 사건의 지평선


김민선


경계에 위태롭게 서있는 이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꿈을 꾼다. 경계 지어지는 것들과 경계를 넘어서​는 것들 사이, 무수히 많은 존재들이 뒤엉킨다. 수조에 갇혀 있는 가오리부터 바닷속을 유영하는 ​해파리까지. 몸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닌 수백, 수천 개의 촉수가 긴밀히 모여있는 것과 다름 없다. ​단단해보이는 몸의 물성은 숨과 빛과 물이 통과하며 흔들리고야 만다. 열린계(Open System)로서​의 몸은 몸 안에서 대화하고, 몸 바깥과도 기꺼이 관계 맺는다. 그렇기에 어떤 몸은 한순간에 서로 ​다른 존재가 되기도 한다. 경계에 갇힌 가오리인 동시에, 경계 없는 해파리가 된다. 죽고 싶지 않은 ​열망과 생을 따라 흘러가는 고요함이 함께 스며든다.

탈바꿈


김민지


나는 계속 무너지고 있다. 나는 자꾸 부서지고 깨지며 작아져 간다. 그러나 그건 탈피의 과정이​기도 하다. 또 다른 나로 나아가는 과정이다. 나는 달라지길 원한다. 지금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되​기를 소망한다. 그것은 자기 부정과도 맞닿아 있다. 그러나 방향이 있는가? 어디로 가고 싶은​가? 그건 알지 못한다. 무엇인지 모른 채 나는 그저 서 있을 뿐이다. 일단 무엇이든 볼이 터지도​록 우겨 넣는 중이다. 그것이 소화되고 나면 무엇이든 배출되기를 기다리면서. 그러나 설사 아​무것도 배출되지 않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대도 괜찮다. 이미 먹어봤으니까. 목이 터지도록 밀​어넣고 나서 그걸 토해낸 나는 구토 이후의 나일 것이다. 입안에 찝찝하게 냄새가 남아있는. 아​무리 헹궈도 사라지지 않는 냄새가 내 주위를 계속 떠다닐 것이다. 그걸로 됐다.


아 잠시만 그러고 보니 원주율도 42잖아


김한나(https://www.instagram.com/404.explorer )


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나에게 어느 정도는 아름다운 면이 있다고 믿고 싶다. 그럼 ​그렇게 믿고 말지 이 글을 왜 쓸 수밖에 없었냐 하면 나를 알아 주길 바라기 때문이다. 바깥 세상​을 받아들이기에 나는 아직 성숙하지 못해 공상의 실을 뽑아 내 몸을 감아 왔다. 그렇게 누에고​치가 된다. 누에고치에게는 세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유의미할까? 글쎄 그냥 누에고치가 ​죽지 않았다는 것, 살아내고자 부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걸 누군가 알아줬으면.

레비나스를 읽는 서울


남영신


최근 서울 곳곳에서 레비나스의 원서를 읽으며 세계를 관찰했다. 길가에 쪼그려 낡은 휴대폰​에서 나오는 음악을 귀에 대는 노인과 횡설수설하며 영등포구청의 역사를 설명해준다는 남​자, 그리고 진짜, 하나의 존재인 수많은 얼굴들. 레비나스는 '타자는 그 초월성(외재성) 때문​에 마치 죽음처럼 나의 자유를 위협하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그의 상처받을 수 있는 가능성과 ​무력성 때문에 나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존재'라고 말한다. 따라서 나는 그를 보살피고 돌​봐야 하고 이런 환대를 통해 존재의 두려움이 사라진다고. 이 관계는 기존의 이민자 등 사회​적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잠재적인 모든 폭력에 스스로를 노출시키​라는 요구이기도 해서 너무 급진적이다. 소위 합리적 사고와 이성이 다 담아낼 수 없을 정도​로. 레비나스가 알려주는 세계와의 관계, 타자와의 관계는 언어와 지식으로 세계를 닫아버리​지 말고 영영 열릴 것을 요구한다. 자신을 초월하라니, 생각만해도 아프고 고통스럽다. 그래​서 생각은 곧잘 멈춘다. 레비나스가 말하는 초월을 위해서는 많은 말과 철학보다 서로 만짐과 ​문지름 같은 것이 더 필요할 것 같기도. 신비와 계시, 곱씸음과 명상이 필요한 시간이다.

이르츠쿠츠로 가는 741번 버스


이수련



모르는게 좋다. 알고싶지 않다. 아는것이 늘어나는건 지겹다. 그건 죽는것과 같다. 살기위해 ​모르고싶다. 그래서 자주 잠에 든다. 꿈에서는 항상 익숙한 모르는 곳을 헤맨다. 깨고나면 땀​에 흠뻑 젖어있는데, 열에 한번 정도는 눈물이었던 것 같다. 꿈에서도 지겨울 땐 사람을 찾았​다. 그건 언제나 새롭고 괴로워서 살아있는 감각을 준다. 가끔 둘이서도 지겨울 땐 떠나버리​면 된다. 발은 붙이고. 이걸 다 설명하자니 너무 길어 시를 쓴다. 너는 알아줄거지 이 축축한 ​꿈을.


올리브 그린


이수연(https://www.instagram.com//sean2zero )


떠한 상태와 감정을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을 때가 있다 내게 있어 무기력함이 그러하다 ​여전히 모르겠다 그 순간 내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어느 날은 처연한 내 ​눈동자가 안쓰럽다가도 또 어느 날은 늘어진 팔다리가 무척 맘에 들었다 때때로 밝지만 때때​로 어둡다 그리고 대부분 그 어딘가의 상태에 머무른다 나는 세숫대야에 얼굴을 박아버리는 ​내가 어느 날은 고통스러웠을 것이라 생각하다가도 또 어느 날은 그 지점을 넘어 편안할 것​이라 생각했다


장르의 경계면에 가설을 긋기


김유수 (시인)


“결국 어떤 형식도 자신의 장르를 망각하지 못한다. 장르가 형식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. 반​대로 형식이 장르를 재정의하고 대상화하는 동시에, 그 과정에서 장르 내부에 귀속된 자신을 발견하​는 것이다. 우리가 형식을 하나의 체계로 보는 관점을 수용한다면, “체계를 만드는 한 가지 방식은 자​기에게서 산출된 것을 다시 자기에게 되돌리는 것이다.”[3] 형식이 장르의 기억을 작동시킬 때 그 작​동 과정에서 형식은 자신의 고유함을 증언할 수 있게 된다. 또한, 하나의 새로운 형식을 창조한다는 ​것은 세계를 나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‘권능의 행사’인 동시에 세계 안에 내가 있음을 확인하는 ‘귀​속의 과정’이기도 하다. 이러한 역설을 ‘나’라는 것이 장르 외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점과 겹쳐서 생​각해본다면, 상이한 발화 장르를 경쟁시키는 그들의 형식 실험은 무엇보다 ‘나’의 존재함을 실험에 붙​이는 작업일 테다. 따라서 나는 그들이 수행한 하나의 프로그램, <영상과 대담의 형식으로 시쓰기>를 ​‘나의 가설화‘라는 측면에서 바라보고자 한다. 두 발화 장르의 경계면에서 그들은 그들 자신을 일종의 ​가설로서 가시화하게 되었으며, 이것은 장르의 경계에 서고자 한 자의 필연적 운명이자, 우연적 발명​이다.” ...더보기


(2024, 블로그, 미디액트영상미디어센터 )


이여로 비평

형식과 자유: 가치판단 없이 가치를 경험하기, 9편의 영상시와 함께


이여로 (평론가)



이 글은 미디액트에서 발표했던 「형식과 폭력:우리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」와 한 쌍을 이룬다. ​우리가 무엇을 했는지, 9편의 영상시 각각에 비평으로 답함으로써, 해당 모임의 제목인 〈영상과 대담​의 형식으로 시 쓰기〉에서 남아있던 ‘대담’의 자리에 함께하고 싶었다. 나는 모임날 조금 우악스럽게 ​굴었다. ‘수업’이라고 말하는 진행자 앞에서 거듭 ‘모임’이라 말하고, ‘이여로가 뭐고, 김유수가 뭔데’ ​마지막 날 나타나 비평을 쓰냐고 자문했다. 그것은 나의 취약함 때문이었다. 나는 2기를 함께한 9명과 ​면밀히 6주의 시간을 만난 것도 아니고, 이들과 알고 지내던 것도 아니며, 이들로부터 초청받은 것도 ​아니다(김해솔이 지하철에서 초청했다). 우리가 같은 규범이나 가치를 공유하며 자동으로 내부화(시​인 지망생과 시인 선생님의 만남처럼)되는 것도 아니었다. 내가 이들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유일한 시​간은 약 1시간의 발표와, 여기 한편한편에 남긴 비평의 지면 뿐이었다. 이것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. ​우리가 무슨 관계인지, 이 말은 어떻게 읽힐 것인지 알 수 없는 불안. 이 불안은 우리 자신을 제도화함​으로써 극복될 것이다. 자신이 누구이며, 상대는 누구이고, 이 자리는 어떤 자리이고, 나는 이것에 말​할 자격이 있다는 유무형의 자격을 획득하고 그것을 내재화함으로써, 말하기는 유창해진다. 하지만 ​나는 불안의 자리를 떠날 수 없다. ...더보기


(2024, 블로그, 미디액트영상미디어센터 )